본문 바로가기

질병과 건강/강직성 척추염 썰

강직성 척추염 투병기 3 : 자의로 치료 중단했다가 입원했던 썰

반응형

휴미라를 처방받은지 4년 남짓 되었을 무렵, 처음에는 2주에 한 번 맞던 주사를 3주에 한 번, 그리고 한달에 한 번 맞아도 그 사이 통증이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착각과 자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모든 병에는 휴지기라는 것이 있다. 이 휴지기에 들어서면 질환의 통증이 없어진 것 처럼 느껴지고, 완치가 된 착각을 하게 된다. 이 휴지기를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기간이다. 하지만 멍청했던 나는 점차 몸 관리에 소홀해 지기 시작했고, 주사를 걸러서 맞거나 까맣게 잊어버리고 두 달 가량이 지난 적도 있었다. 거기에 겹쳐 내 주치의 분이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진료는 그 분 휘하의 전공의께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르게 되었다. 
 "선생님, 주사 안 맞아도 될 것 같은데요?"
전공의 분은 내 말을 듣고 주사 처방을 중단해 주었다. 주치의 분이었다면 나를 혼냈겠지만, 환자를 떠맡게된 전공의 분이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고 3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뻐근한 느낌이었는데, 점차 발바닥 전체로 통증이 진행됐다. 찾아보니 족저근막염과 유사한 증상이었다. 집 근처의 정형외과 수족센터에 갔고 그 곳에서는 내 증상을 듣더니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자 통증이 가라앉았고 아프면 다시 약을 먹고 안 아프면 활동하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계단을 못 내려갈 정도의 통증이 시작되었고, 그 것이 1년 가량 집에서만 지내게 되는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발 뒤꿈치, 아킬레스건이 붓기 시작했고 이어서 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앓았던 연골연화증 고통과 비슷한 종류였으나 정도가 심했다. 병원을 가려고 마음 먹은 날은 또 통증이 줄어들어 걸을만 했다. 그때라도 병원에 갔어야 됐지만, 무슨 생각에선지 가기가 싫어 개겼던 것 같다. 
이때부터 통증부위가 제멋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어깨, 어떤 날은 등, 어떤 날은 하루종일 설사를 했고, 두통이 시작됐으며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턱에 통증이 심한 날도 있었다. 혈변이 같이 동반되었다. 그러고 미련하게도 열 달 가량을 진통제를 먹으며 참았다. 
당시 유통업을 하고 있었는데, 밖을 못나가니 모든 거래가 끊겼다. 그나마 하던 재택근무로 인해 근근히 생활은 할 수 있었다. 
통증이 매우 심해서 아무 것도 못하는 날이 있는 반면에, 갑자기 몸이 호전되서 며칠 동안은 컨디션이 좋기도 했다. 그러면 또 한동안은 나아질 것 같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패혈증 징조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다니던 병원에 예약을 했다. 내 주치의가 유학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발바닥 통증이 시작되고 집 밖을 못 나간지 딱 열달이 되던 날이었다. 
내 미련한 짓을 듣고 차트를 보던 주치의 분은 나에게 당장 입원을 권유했다. 긴급하게 입원을 하였고 며칠 체력을 회복하는데 몰두했다. 당시 몸무게가 15키로그램 정도 빠져있었고, 반복되는 혈변으로 인해 얼굴과 몸 전체가 창백했었다. 
입원하고 대기하며 각종 검사와 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내 몸의 염증이 0.5수치라고 했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정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나와 같은 병실에 있던 패혈증 진행 중인 다른 환자 분이 1의 염증 수치라고 듣고는 내가 비로소 패혈증 전단계 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척추염의 염증이 대장으로 전이되어 장충혈(출혈까지는 아니고 출혈 직전 심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을 일으켜 염증이 긴급히 진행이 되었다고 했다. 소화기 내과와의 협업을 통해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 그리고 혹시 모를 대장암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해당 질환으로의 합병 소견은 없었으나, 염증성 장질환으로서 얼마든지 다른 질환들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렇게 입원 생활을 했고, 한 달 남짓 지나 퇴원을 하게 되었다. 혈변이 멈출 동안 금식을 했고, 링거로만 연명했다. 
몸 상태는 발바닥에 통증을 느끼기 전, 한창 컨디션이 좋았던 무렵으로 아직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한 쪽 어깨도 잘 올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때 재활의학과에 의뢰를 하여 장애신청을 하였고, 지체장애 5급을 받게 되었다. 

나의 이 무지하고 멍청했던 짓을 쓰는 이유는, 많은 자가면역질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하여금 나같은 멍청한 짓을 하지말라고 하고 싶어서이다. 
거의 매일 먹는 소염진통제와 한 달에 두세번은 맞아야 되는 면역억제제인 주사가 언젠가는 내 몸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확실한 부작용 때문에 나처럼 멍청하게 치료를 자가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항상 모든 행위를 주치의와 상의한 후 결정하라고 거론했던 이유다. 
내가 앓고 있는 강직성 척추염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자가면역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절대 치료를 자의로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퇴원하고 나서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멍청한 짓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부디 나같은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반응형